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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진정한 나에게로 이르는 성장통

SeaLine 2015. 10. 18. 18:24

[독서]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진정한 나에게로 이르는 성장통






# 총평




한 청년의 성장모습을 사실적이고 자세한 심리묘사로 표현한 작품.

<데미안>은 성서의 내용이나 헤르만 헤세가 겪은 제1차 세계대전의 상황을 알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작가의 프로필과 '카인과 아벨' 등의 성서 내용을 찾아보고나서, 두 번째로 읽으니 새롭게 보이거나 정리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 중 악한 인물들 (프란츠 크로머 / 알폰스 베크 / 피스토리우스)를 빼고 나머지 인물들은(막스 데미안 / 베아트리체 / 크나우어 / 에바부인) 다양한 모습의 '싱클레어 자아'라고 생각된다. 보통은 데미안만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난 베아트리체, 에바부인은 이상형에 대한 생각들이고 크나우어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못난부분을 크게 질책하고 마음을 다 잡는 생각들이지 않나싶다.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와 싱클레어의 자아들이 대화를 통해 깨우치면서 점점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리려 한 것 같다. 


개인마다 자기 안의 언어가 있고 생각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나 고민들의 종류가 다르지는 않나보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되었고, 내가 고민하는 마음들과 오버랩되어 읽혀졌던 것 같다. 


교훈적인 내용을 보면 '자기개발서' 같다. <데미안>을 읽다보니 자기개발서 책 중에 론다 번의 The Secret (시크릿)이 생각났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시크릿>과 향하는 방향이 같은 메시지인 것 같다. 어찌됐던 긍정적인 사고와 건강한 정신은 확실히 미래를 밝게 만드는 것 같다.





밑에는 제마음대로 선정한 문장 및 제 생각을 적었습니다. 

정답은 아닙니다~~~~~~~~~~~~~~~~~~~~~~~





1.두 세계






  두 세계 중 하나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 세계는 오직 나의 부모님뿐인, 솔직히 말해 비좁은 세계였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이 세계의 대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 ...

또 다른 세계는 우리 집 한가운데에서 시작되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 ...


P11



  가장 이상했던 점은 이 두 세계가 나란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두 세계는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예를 들어 우리 집 하녀 리나는 저녁 예배 시간이면 거실 문가에 앉아 말끔하게 다린 앞치마 위에 깨끗이 씻은 두 손을 얹고 밝은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그때의 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우리의 밝고 올바른 세계에 완벽하게 속해 있었다. 하지만 부엌이나 외양간에서 내게 머리 없는 난쟁이 이야기를 해줄 때나, 작은 가게 안에 있는 정육점에서 이웃 아낙들과 쌈질을 할 때면 비밀에 둘러싸인 다른 세계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P13

 


: 하녀 리나의 사례는 두 세계를 잘 보여준다. 가족과 가족 이외의 세계라고도 구분되며, 선과 악의 세계라고도 생각되는 이 구분법은 어린이의 시각에서 표현되었지만, 원초적 / 종교적인 의미가 담겼을거라 생각된다. 


 원초적으로 인간은 일정 기간 자란 후 독립을 원한다. 어린 싱클레어는 가족들 보호 아래있는 세계를 "솔직히 말해 비좁은 세계"라고도 말하는데, 가족 품에 있지만 밖으로도 나가고 싶은 마음(호기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소설의 바탕이 되는 하느님을 믿는 종교(기독교)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점과 평화가 깨지고 전쟁(제1차 세계대전)으로 눈을 돌린 인간, 신의 보호가 없던 세상을 바깥세상이라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던 모든 체험 중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또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아버지의 신성함에 나타난 최초의 균열이면서, 어린 시절을 받치고 있는 기둥, 그러니까 누구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무너뜨려야만 하는 그 기둥에 최초로 금이 간 것이다.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만 비로소 운명의 깊은 골을 구성하는 윤곽이 생성되는 것이리라. 이런 균열들은 다시 아물거나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내면의 방에 남아 언제까지고 피를 흘리게 된다.


P31




: 이 내용 앞에는 어린 싱클레어가 처음으로 악한 생각(마음)을 먹게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이 생각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무너뜨려야만 하는 그 기둥의 금"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기둥, 그러니까 기둥이 떠 받들고 있는 구조물은 아버지, 어머니가 알려준 선과 악의 기준들(외부의 이념, 사회적 통념)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 후반부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야함을 강조한다. 그것이 '진정한 나'로 가는 길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장점은 우리(사람) 내면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서술하여 이해를 시킨다는 점이다.




2.카인





  난 본능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균형과 평화로 돌아가려 했고, 추하고 위협적인 수많은 것들을 떨쳐버리고 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그러자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내 잘못과 두려움에서 탄생한 긴 이야기가 기억에서 사라졌다. 어떤 흉터나 인상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제야, 그 과정에서 내게 도움을 준 나의 구원자까지 똑같이 빨리 잊으려 했다는 걸 깨닫는다.


P71




: 자신을 도와준 데니안을 저버리는 대목. 이건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도 일어나지만 종교적으론 냉담, 자신의 자아를 외면하는 정신분열의 행동과도 연관되어 보인다. 그렇게 보면 전쟁 후 젊은이들의 심리상황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건 그의 이상한 생각들을 의심했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또 그런 생각이 타당하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두려웠을 뿐이었다.

... ...


  오늘날에야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꺼려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P74



: 싱클레어와 크로머, 데미안이 이루는 사건전개과정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와 겹치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처음엔 크로머가 '카인'으로 대표되는 악한 모습으로 전개되지만 싱클레어는 내적 갈등을 통해 자기를 도와준 데미안을 결국 외면해버리는 '카인'과 같은 행동으로 마무리된다. 앞서 데미안은 '카인'을 옹호하는 과점을 싱클레어에게 말해준다.


* 언뜻 스친 생각으로는 서로 죽여야 하는 전쟁을 겪은 당시의 젊은이들은 죄의식과 피해의식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작가는 '그건 관점의 차이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내비치면서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3.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






   정말로 내 존재 전체가 그 소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만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거야. 정말 그런 경우라면, 그러니까 네 내면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시도하면 그건 이루어지게 돼.


P91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가 세 개나 나란히 서게 되다니, 대단한 장면이지 ... 그는 애초에 죄인이었고 ... 그런 그가 마음이 여려져서 그토록 눈물겨운 회심과 참회를 하다니! ... 감동 덩어리에 교화적인 배경이 깔린, 달콤하고도 정직하지 못한 이야기잖아.

P96



   나는 몹시 당황했다. 십자가 수난 이야기를 훤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제야 비로소 내가 그동안 이 이야기를 얼마나 내 주관 없이, 상상력이나 환상도 없이 그냥 듣고 읽기만 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P97




: 먼저 간단히 십자가 수난 이야기를 하자면, 십자가는 예수가 살던 당시의 형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예수 외에도 두명의 강도가 십자가 형벌을 받게 되는데 한명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한명은 참회의 눈물을 흘려서 하느님의 나라에 갔다는 이야기다. 결국 일반적으론 참회의 눈물을 흘린 도둑을 올바른 사람이라 평가하는데 데미안은 이 관점을 엎은 것이다. 데미안은 이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나'에게로 이르는 길을 말해준다.






   데미안과 가까이 지내면서 영향을 받은 데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는 교회에 받아들여질 준비를 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곳, 즉 사색과 인격이라는 교단에 받아들여질 준비를 했던 것이다.


P103



: 데미안이 '사색과 자신의 인격 구축'을 중요시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4. 베아트리체






   이렇게 새로운 모임 속에서 나 홀로 고독하고 다른 존재임을 알면 알수록 그들에게서 헤어나기가 더 어려웠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노는 게 정말 즐거운지도 알 수 없었고, 또 술을 마시는 일 자체도 후유증이 없을 만큼 적응되지도 않았다. 그 모든 걸 마치 누가 강제로 시키기라도 하는 듯했다.


P120


: 공감가는 내용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는 꼭 그 무리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 자체도 없어질까봐 더 매달리고 집착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주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 주위 관계에 너무 매달리다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너진다.





    갑자기 내 앞에 다시 하나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내게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그리고 내 안의 어떤 갈망이나 충동도 이 소녀를 받들고 숭배하고 싶은 소망보다 깊고 격렬하진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단테를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복제물로 갖고 있는 어느 영국 화가의 그림 때문에 그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P125


: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싱클레어의 모습. 이전까지는 술과 몹쓸행동 등으로 성에 대한 생각을 회피(?) 해왔다면 이후에는 이 여인(베아트리체)을 기준으로 삼고 동경한다. 순간 스치는 생각이 '사랑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사랑의 아픔은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는 말이 생각난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통해서 더욱 사색하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이 문장에서 예상할 수도 있다.  


#베아트리체 : <신곡>을 쓴 작가 '단테'가 평생을 두고 사모한 여인, 실존 인물이 아니라 단테가 창조한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설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못지않게 서양 문화 속에서 연인, 애인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어 왔다.


*아!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하는 점이 헤르만 헤세의 글 스타일이다. <데미안>에서 여성에 대한 동경이 그림에 투영되는데, '자연'과 '그림',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은 이후에 일본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 소설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아 물론 하루키가 헤세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방 안이 온통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착상이 떠올라 창살이 십자로 교차하는 부분에 베아트리체 혹은 데미안의 초상을 핀으로 고정하고, 붉은 저녁 햇살이 그림을 통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윤곽 없이 흐릿해졌지만 붉은색으로 테두리를 그린 눈과 이마의 밝은 색깔, 격렬하게 붉은 입술만은 종이 표면에서 깊고 거칠게 빛났다. 나는 오랫동안 앉아서, 빛이 사라진 뒤에도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츰 그림 속 얼굴이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느꼈다. 그림은 나와 닮지는 않았지만 - 닮아서도 안 되지만 - 그래도 이 그림의 얼굴은 내 삶을 이루고 있는 내 내면이자 운명이었고 나의 데몬이었다.


P133



: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림을 통해서 베아트리체 = 데미안 = 나(싱클레어)를 동일시 하였는데,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관계는 이해가 되지만 이성인 베아트리체는 어떠 의미를 지니는지 잘 모르겠다. 더 뒷쪽으로 가면 이 그림의 인물이 남성다워져서 남여구분이 안되는 수준에 이르고 그 모습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이라는 걸 알게된다. 






5.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갯짓한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다!'


P145



: 새는 인간을, 알은 갇혀있는 자신의 연약한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자신의 고정관념들과 싸워 이김으로써 '성숙한 나'로 태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신은 선도 악도 아닌 자기 자신! 주관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예감의 꿈속에서 내가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을 부른다는 걸 느꼈다. 쾌락과 공포, 남성과 여성이 뒤섞이고 성스러운 것과 추악한 것이 서로 얽힌, 그리고 가장 섬세한 순진함에 의해 흠칫 놀라는 깊은 죄악.

P149~150


: 싱클레어가 밤이 아닌 낮에 꾸게되는 "이 꿈"에서 나타나는 형상은 어떤걸 의미하는 걸까?




   "우연이라고! 그런 어의없는 소리 마슈, 젊은 양반! 아브락사스는 그냥 그렇게 알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똑똑히 알아두시게. 내가 그 신에 대해 이야기해드리리다. 당신보다는 좀 더 알고 있으니까."

P160


: 교회에서 만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 아브락사스가 실제로 기록물에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싱클레어는 아브락스에 대해 피스토리우스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산이며 강, 나무와 잎새,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형태가 우리 안에 이미 새겨져 있고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유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성이고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하지만, 그 원천은 대부분 사랑과 창조의 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P167


: 뒤에서 부터 읽으면 사랑과 창조의 힘을 통해 영원성을 얻고, 영원성은 우리 영혼의 본질!! 





6. 야곱의 싸움




   나는 그의 팔을 잡고 한참을 걸었다. 내 안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이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넌 잘못된 길을 걸었던 거야.

P193

: 크나우어는 싱클레어 속의 또다른 자아인 것 같다. 자신이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있어 괴로워하며 자기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행동, 그리고 싱클레어가 크나우어를 찾기 전에 그림을 불태우고 꿈 속처럼 몽롱한 상태로 마을 여기저기를 다니는 모습으로 보아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성 or 호기심)가 의인화된 것이 아닐까?



   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 자신도 소스라치게 노랄 만큼 악의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당신이 밤에 꾸는 진짜 꿈 이야기나 해주시죠. 지금 그 이야기들은 뭐랄까, 지극히 고리타분하군요!"

P198


 : 싱클레어와 피스토리우스의 의견차, 싱클레어는 이 사건으로 또 무언가를 느끼고 깨달게 됨.




7.에바부인






   "사랑은 부탁하는게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요구해서도 안 되지요. 사랑하려면 자기 안에서 확신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고, 상대를 이끌어오게 되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지금 내게 끌려오고 있어요. 그 사랑이 나를 이끈다면 내가 갈 거예요.


P239





8. 종말의 시작



: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난 모습이다. 앞의 내용들보다는 좀 더 직설적이고 정확하다. 마지막에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헤어지게되는데 데미안이 말하는 대화를 보면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모두 흡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싱클레어가 모든 깨우침을 얻고 자기 자신을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 2014-1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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