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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 비밀독서단이 알려준 아련한 서정시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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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 비밀독서단이 알려준 아련한 서정시집

SeaLine 2015. 10. 27. 21:08

[독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 비밀독서단이 알려준 아련한 서정시집






 시를 읽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TVN 비밀독서단을 통해 박준 시집을 알게되었다. 사실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시집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제목부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시를 찬찬히 읽어 넘기다보면 자신의 삶을 담은 시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박준 시인 이야기지만, 읽고 있는 나의 이야기 같기에 더욱 아련해지는 시다. 여기에 나오는 '당신(미인)'의 존재는 연인일 수도, 그의 누나일 수도, 어머니일 수도, 아니면 그 어떤 누군가일 수도 있는 시들이다. 그래서 누가 읽든 자신의 이야기가 함께 묻어 나올꺼라 생각된다.


 박준의 시들은 하나하나가 퍼즐 조각같았다. 퍼즐 조각이 모이면 아버지가 되고, 퍼즐조각이 모이면 미인이 되는 그런 시집이다. 나도 그 시들을 읽으며 과거의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현재의 누군가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넘기기 힘들어 책장마다 땀이 스몄다.








시집에 있는 시들이 다 너무 좋다.

읽을때마다 새롭지만, 두번째 읽고 느낌이 '확' 왔던 시구와 내 느낌을 한번 써 본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 ...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게 좋았다


- 25 -

<꾀병> 中




: 시인의 힘든 삶이다. 박준 시인만의 힘든 삶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시들을 읽고 있으면 그 삶이 부러워 시기심이 생길 때도 있다. 고단하고 힘겹게 살아온 삶을 아름답고 부럽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내 맘을 흔드는 것이다.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 34 -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中




: 연인의 생각만으로도 꿈을 꿀 수있다. 우습게도 곁에 없음에 더욱 내 안엔 존재한다. 그런 그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함께하고 싶다.






- 40 -

<지금은 우리가> 전문



: 이 시집에 있는 시 중에서 내 생각에 가장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시이다. '그때 우리는' 별 밝은 날에 있었고 '지금 우리는' 별이 지는 날에 있다. '자정이 지날만큼' 오랫동안 함께 하였지만 결국은 '좁은 마당을' 비켜준다. 별이 지는 '새벽의 하늘에는' 앞서 진행 중이던 시간이 끊기고, '다음 계절'이 흐른다. 하지만 별들은 쉽게 지지못하고 올지 안올지 모를 아침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빛나고 있다'.

 난 이 시를 읽으며 밤이면 울컥해지던 그 감정이 떠올랐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상대의 상실. 그래서 나에게 더 많은 말을 해야했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이 시의 '우리'는 연인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 '아버지와 나', '누나와 나'를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상실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더 대단한 시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 44 - 

<호우주의보> 中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55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中



: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나에겐 어려운 시다. 저 문장은 이해가 되는데 시 전체는 어떤 내용인지 시인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써 내려갔는지 짐작도 어렵다. 이런거에 욕심이 나는 나라서 옆에 두고두고 읽어봐야겠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69 -

<마음 한철> 中


: 서로가 엊갈리던 순간이 두 손을 꼭 잡으며 애틋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었는데... 

더욱 그리워진다.








역시 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감동이 밀려온다.

박준 시에도 많은 감동과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있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 中





휴지로 입을 닦다 말고는

아이들이 보고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 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낙서> 中





당신의 눈빛은

나를 헐게 만든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문병 - 남한강> 中









 나는 이 시집을 사람 많은 카페보다는 익숙한 방 안 침대에 기대어 읽기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읽을 때마다 좋은 느낌이라서 한동안은 계속 들고다니며 읽고 또 읽을 생각이다.









<이 책은>


짧은 말 속에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그러니깐 너무도 아팠고 지금도 아프고

앞으로도 곱씹을 아픔들이

담겨진 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저자
박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12-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불편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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