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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생각
"속이 깊은 아이예요"결혼 전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시어머니가 남편을 두고 한 말이었다. 옳은 말씀이었다. 어찌나 속이 깊은지 속을 볼 수가 없는 남자였다. 그녀를 들여 놓지도, 그녀에게 보여주지도 않는 통제구역들이 있었다. 알려들면 들수록 자물쇠가 튼튼해지는 구역이었다. 외골수에 융통성도 없었다. 유순해 보이면서도 고집이 셌다. 성실해 보이면서도 무책임했다. 중에 그 때 그녀도 날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유순해 보이면서도 고집이 쎈 남자. 외골수에 융통성이 없는 남자. 그리고 무책임한 남자. 내가 만든 인상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겉을 바꿔도 속의 형태가 읽혀버렸다. 나도 내 자신을 바꿀 수가 없었다.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내뱉고 있었다. "넌 고집이 쎄" 내 행동이 그녀에게 상처..
출근은 10시. 1시간 전쯤 스타벅스에 도착한다.몽롱한 아침. 사람들 가득한 지하철 안을 탈출하고 나면 기가 빨린 기분이다. 아침의 몽롱함을 즐겨야 하는 난 카페에 오는 걸 선택한다.구속되기 싫어하는 내가 아침 30분이라는조금의 자유를 느끼고자 하는 이상 행동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대학생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첫 수업을 시간표에 넣기도 했지만 꼭 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면 굳이 꾸역꾸역 넣기는 싫었다. 더 본격적으로 가게 된 건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 때부터다.노트북이 생기면서 앉아는 있는데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그 당시엔 그곳처럼 콘센트가 많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이 드물었다. 특별히 비싼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비싼 취미랄 것도 ..
"전에 이거 먹었었잖아. 기억 안 나?""여기서? 우리 여기 왔었어?""아니, 저번에 분위기 좋다던 그 선술집에서 시켜 먹었잖아. 또 까먹었어?" 또 까먹었나 보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시작한 나는 이젠 무덤덤해졌지만, 뭐든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는 그 사람에게는 못마땅한 게 당연하다. 그래도 이런 거로 싸울 수 없어 바보같이 씨익 웃어 보이면 오히려 못마땅함이 배가 된 얼굴을 마주하기 일쑤다. 이상하게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그 표정만큼은 다 기억난다. 그 사람과 만날 수 없는 지금에도 기억이 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