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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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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다

SeaLine 2016. 1. 13. 13:12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다 -

난 이렇게 겉표지는 벗겨두고 읽는다. 구겨지는게 싫어서 -


알라딘 서점을 둘러보다가 <여자 없는 남자들>을 발견했다. 

나는 책이나 영화가 한참 유행일 땐 거들떠도 안 보는 청개구리병이 있다. 

베스트셀러에도 올라와있던 이 책을 이제서야 펼쳐보았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7편이 묶인 단편집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사랑하는 잠자, 여자 없는 남자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분위기의 내용일지 짐작이 안 갔다. 간단히 타이틀을 덧붙여보았다. 


1. 드라이브 마이 카

죽은 아내의 외도남을 찾아갔다. 아내의 마음을 알고 싶다.


2. 예스터데이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의 여친과 교제할 것을 제안했다.


3. 독립기관

잘 나가는 독신주의 성형외과의사, 어느 날 진정한 사랑을 만나다.


4. 셰에라자드

관계가 끝나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 내일도 올까.


5. 기노

아내가 바람났다. 난 왜 조용히 모든 걸 포기하게 되었을까.


6. 사랑하는 잠자

어느 날 나는 곤충에서 인간이 된다. 그리고 한 여자인간을 만난다.


7. 여자 없는 남자들

옛 애인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 느낌대로 붙여 본 타이틀, 책이 좀 달라보이는 것 같다. 

평범한 내용들은 아니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뜻은 

'사랑'과 '상실'이란 생각이 든다. 





▒ 짤막 리뷰


여기 나오는 이야기들은 남자의 언어다. 

이전의 소설도 그런 의견을 많이 들어왔지만 

<여자 없는 남자들>을 여자들이 본다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큰 이유는 남녀 인물들의 비도덕적인(부적절한) 관계 구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성이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기 보단 

그저 현실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더욱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고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상식에 맞거나 평범한 삶은 아니지만 분명 현실의 누군가는 겪고 있을 일상이다.

나도 소설 속 몇몇 부분에 공감이 되었다.


중년의 남자.

이 책의 화자들은 중년의 남자들이다.

20대, 저돌적인 사랑이 아닌

묵직한 '추'를 달아놓은 듯한 느낌의 이야기들


30대에 접어든 나이,

지금껏 겪었던 사랑경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중년의 나이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감정이입이 되는 촉매제가 되었던 것 같다.


소설 속 화자들은 나이도 상황도 조건도 다르지만

여자와 관련되서는 잃었거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하는 

상실의 상태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그 상태에서 그들이 바라는 방향들도 모두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 그 상실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에게 여자란 어떤 의미일까? 

꼭 그렇듯 우리는 잃은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달게 되는 것이다.












밑줄긋기


드라이브 마이카



P47


그날 밤은 아오야마의 작은 바에서 술을 마셨다. 네즈 미술관 뒷골목의 눈에 띄지 않는 가게였다. 마흔 안팎의 말수 적은 남자가 항상 바텐더로 있고, 구석 장식장 위에서는 비쩍 마른 회색 고양이가 둥그랗기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이 바에 붙어사는 근처 길고양이인 모양이었다. 오래된 재즈 레코드가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갔다. 그들이 만날 때는 왜 그런지 비가 내릴 때가 많았는데, 그날도 가랑비가 흩뿌렸다. 

 다른 분들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술집은 뒤에 나올 <기노>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을 읽고 <기노>를 읽게 되니깐 나도 2번째 읽을 때 알게 되었다. 

 가후쿠와 기노는 남편이었지만 아내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후쿠는 기노 술집에서 외도남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띤 토론을 펼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내의 생각을 짐작하지도 외도남을 추궁하지도 못한다. 


P51

"하지만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 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 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숙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후쿠는 아내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생각하기엔 아내와의 관계가 아무 문제이 흘러갔다고 해도 말이다. <예스터데이>의 키타루는 여친 예리카가 피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던 것처럼 가후쿠도 아내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P59


"부인은 그 사람에게 애당초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마사키는 매우 간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잤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예스터데이



P90


"하지만 젊을 때 그런 외롭고 혹독한 시기를 경험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넌 그렇게 생각해?"

"나무가 늠름하게 자라나려면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항상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에선 나이테도 안 생기겠지."

나는 내 안에 있는 나이테를 상상했다. 그것은 먹다 남긴 지 사흘은 지난 바움쿠헨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웃었다.


P109

"안타깝게도 나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 그래서 그렇게 멀리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었어. 아직도 한참 그러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가만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다. 

특히 우리는 사랑 앞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것은 나와 너가 만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립기관



P137


"'사랑의 밀회 후 애타는 그리움에 비하면 예전의 그리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네'라는 옛 노래가 있죠." 도카이가 말했다.

"여기서 '사랑의 밀회'란 남녀의 육체관계가 포함된 만남을 가리킨다고 대학교 때 강의에서 배웠어요. 그때는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 노래의 작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실감이 납니다. 그리워하는 여자를 만나 몸을 섞고, 작별인사를 하고, 그뒤에 느끼는 깊은 상실감. 애타는 심정.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고백하고 몰래 둘만의 사랑을 나누던 그 날들. 

이젠 모든 것이 바꿔버린 지금에 와서야 

그 날들을 그녀가 아닌 날 위해, 내 행복을 위해서 

그녀를 괴롭힌 건 아닌지 후회와 

나에 대한 실망, 자기 비하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것도 

아직 내가 정신을 못차린 탓이라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쿨하지 못하거나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 그게 정상이야'

고 위로 받은 기분이었다.


P139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자주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녀가 있기에 드는 생각이다.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나지만 그런 내가 뭘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능력을 지녔는지 자신감이 없었다. 

사랑은 정확한게 없다지만 그런 고민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P147


도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비참함. 그녀가 떠날지도 모르다는 불안함. 

나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그렇게 지냈다. 

그것이 어떠한 분노인지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도 모른채말이다. 

난 도카이와 같은 선택도 못했다. 


결국 난 그녀를 잃었다. 




셰에라자드



P214


하바라에게 무엇보다 힘겨운 것은, 성행위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녀들과 친밀한 시간을 공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녀와의 친밀했던 시간들.

이제 생각해보니 그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 살아있는 순간이었다.





기노




P255


가미타는 말했다. "기노 씨는 제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잘 알아요.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P265


그렇다, 양의적이라는 건 결국 양극단의 중간의 공동(空洞)을 떠 안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슬픔, 좌절, 고통에 대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질 못하고 산다.

슬픔, 좌절, 고통을 없앤다고 내 마음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저장할 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잠자


P309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아가씨는 말했다. 이제 그 목소리에는 아주 조금 다정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남자가 사람이 아니였었기 때문에 평범한 말이지만 아릿한 감정이 더한 것 같다.


P311


그녀를 생각하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아련히 따스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란 사실이 점점 기쁘게 다가왔다. 두 다리로 걷고 옷을 입고 나이프나 포크로 식사하는 것은 분명 몹시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되었다면 이렇듯 신기한 마음속 온기를 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걸까. 

내 감정도 한번 리셋하고 싶다.




여자 없는 남자들



P335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앞에 <셰에라자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왜 한 여자를 잃는 것이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일까. 

아직 이해를 못 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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