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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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이다

#2 스타벅스

SeaLine 2016. 1. 18. 15:02





출근은 10시. 1시간 전쯤 스타벅스에 도착한다.

몽롱한 아침. 사람들 가득한 지하철 안을 

탈출하고 나면 기가 빨린 기분이다. 

아침의 몽롱함을 즐겨야 하는 난 카페에 오는 걸 선택한다.

구속되기 싫어하는 내가 아침 30분이라는

조금의 자유를 느끼고자 하는 이상 행동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대학생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첫 수업을 시간표에 넣기도 했지만 

꼭 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면 굳이 꾸역꾸역 넣기는 싫었다.


더 본격적으로 가게 된 건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 때부터다.

노트북이 생기면서 앉아는 있는데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 당시엔 그곳처럼 콘센트가 많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이 드물었다.


특별히 비싼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비싼 취미랄 것도 없는 난

그렇게 된장남이 되었다. 

큰 지출이 없으니 그 정도 지출은 견딜 만했던 것이다.


친구들은 그 속을 알지 못하곤 

아주 비싼 입이라며 혀를 찼다.

나도 어릴 땐 프리마를 아빠 수저로 퍼먹던 아이였는데,

그렇게 이곳은 자기만족의 고상한 장소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9시 아침 스타벅스에서

난 그녀를 기다렸다.


"내 주위에 커피를 좋아하는 남잔 너밖에 없을걸?"


그녀는 커피를 좋아하는 남자를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오직 나만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니깐 더 좋았다.


언젠가부터 아침 스타벅스는 

몽롱한 명상의 시간이 아닌

그녀를 기다리는 긴장된 순간으로 변했다.


내가 좋아하던 공백의 시간에

오롯이 그녀가 차 들어왔다.

기다림이 좋았고 긴장감이 좋았다.

그녀의 민낯은 예뻤다.



세월은 흘렀고

그 공간이 또 변하게 됐다.

그리움으로 가득해졌다.


이젠 여기서 명상을 할 수도

누굴 기다릴 수도 없게 되었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세월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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