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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채식주의자 / 한강 - 통념과 개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

SeaLine 2016. 8. 14. 05:17
< 채식주의자 >
한강

- 집단의 통념과 개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 -




소설 <채식주의자>는 작가가 2004년에 발표한 『 채식주의자 』 『 몽고반점 』 과 2005년에 발표한 『 나무불꽃 』  단편이 연결되는 연작소설이다. 첫 부분 '채식주의자'를 읽을 땐 내용의 맥을 잡기 힘들었다. 그 뒤 몽고반점을 읽고는 혼란스럽고 역겨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내재되어 있던 욕망도 느꼈었다. 그리고 '나무불꽃'을 읽고나선 현실로의 회환과 연민, 삶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며 책을 덮었다.



책의 내용은 그렇게 길지 않다. 책을 손으로 잡을 때 두껍지 않고 가벼웠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이 휘몰아치는 책이다. 겉으로는 난잡한 내용이라 느낄 수 있다. 날고기, 피, 노브래지어, 알몸, 샅, 불륜, 자살 같은 소재는 아주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다.










[(영혜 ←섹슈얼리즘,실행← 형부(인혜남편)) : 비정상정상 : (영혜남편 →섹슈얼리즘,미실행→ 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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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관계와 선택을 
간략히 도식화 해보았다


가족(이라는 정상적인 틀) 안에서 각기 다른 선택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선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정상과 비정상



"아무리 그래도 고기를 아주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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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요즘은 꽤 흔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채식주의자'를 주변의 시선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영혜', 아내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적 없고 그런 평범함이 마음에 들었던 남편. 그렇기 때문에 남편에겐 '평범한' 아내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치며 '조취를 취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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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채식주의>작품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구절, 트라우마로 인한 영혜의 견해가 그대로 드러난 부분. 손도 혀도 시선마저도 무기가 되는 세상에서 가슴만이 남에게 해가되지 않는, 무기가 되지 않는 것. 하지만 그 가슴이 자꾸 여위어 가는 것을 느낀다. 영혜가 칼을 드는 장면에서 그 칼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과 동일시 되는 구절이다. 세상을 이기거나 타협하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하고 세상의 통념과 단절해야하는 인물이다. 세상은 그런 부류를 비정상이라 정의하고 매도한다.



"그런데 형답지 않다. 이거 정말 발표할 수 있겠어? 형 별명이 오월의 신부였잖아. 의식있는 신부, 강직한 성직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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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5

또 하나의 비정상 인물. 영혜의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 
동료 P가 해줬던 말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하려는 행동에 끌림도 느끼지만 반대로 강한 거부감도 느낀다. 결국 그는 감정에 휩쓸리게 되지만 감당은 하지 못한다. 비정상적이라는 부분에선 영혜와 같지만 그는 그 길을 계속 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뛰어내리지 못하는 것도 나중에 아이가 보고 싶다며 전화하는 것도 결국 그런 그의 습성을 보여준다. 나중에 인혜는 그런 남편을 증오하거나 마냥 미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랑 없는 결혼에 대해 복기한다. 작가는 인혜의 남편마저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끌어안는 것 같다.








#트라우마


나는 <채식주의자>에서 말하는 트라우마가 이해된다. 그러나 누구나 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트라우마란 결국 개인의 고통이고 그건 사회적으로 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나의 특별한 행동이나 다소 격앙된 주장들을 복기해보면 그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다. 트라우마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우리는 영혜나 인혜, 영혜남편이나, 인혜남편이 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네명의 인물들이 정확히 구분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십자 그래프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비정상과 정상의 기준은 굳이 나누어 보자면 이렇다는 것이지 옳은 건 아니다.








#통념과 개인의(소수의)고통


평범해서 지루하네 / 좀 새롭고 흥미롭네 / 완전 미쳤네 돌았어. 이 기준의 차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차이가 과연 클까? 얼마만큼인지 모를 그 차이가 엄청난 결과와 상황들을 만드는 건 사실이다. 소설은 영혜의 개인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될만한 큰 이슈도 같이 던지면서 우리의 통념을 흔든다. 완전히 자기 자신을 놓아버린 영혜나 거기에 휠쓸린 인혜남편(형부)보다 어쩌면 모든걸 보고, 느끼고, 감당해야했던 인혜의 에너지가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에선 영혜와 가족의 관계를 보고 있지만 나아가 사회와 개인(소수)의 관계에도 적용이 되는 문제다. 특히 이 소설은 영혜의 시선은 없다. 오직 주위의 시선만 있을 뿐이다. 영혜의 생각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다. 우리의 통념이 그런 개인적인 가치관에 일방적인 잣대를 대고 있다는 모순을 이러한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주인공 '영혜'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다루기 위해서 선택해야하는 가지수는 많겠지만 가족이 바라는 방향은 오직 하나다. 그것이 옳고 (그 반대되는 건) 그른건지 우리는 온전히 결론내리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영혜이고 인혜이며 그들의 남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채식주의자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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